플라톤의 <<알키비아데스>>와 "너 자신을 알라"

 “너 자신을 알라”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 중 “악법도 법이다”와 더불어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. 하지만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, 델피의 신전 입구에 적혀져 있는 말이다.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할 때 이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, 이는 산파술이라는 소크라테스 특유의 진리 탐구방식과 연관해야만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. 

 <<알키비아데스 I>>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알키비아데스가 정치로 뛰어들 결심을 내비치자, 그에게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.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정치란 정의에 대한 앎을 가진 자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다. 하지만 알키비아데스는 정의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. 이에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가 정의에 대해서 모르는 건 물론이거니와,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그가 모르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.

 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앎이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이다. 첫번째 방법은 이미 앎을 가지고 있는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. 그리고 두번째 방법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. 이에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스승인 자신조차 정의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데, 알키비아데스는 어디에서 그 앎을 배웠는지를 먼저 질문한다. 이에 알키비아데스는 다중(多衆)에게 배웠다고 응답했다가 그 답변이 논파 당하자 스스로 깨달았다고 대답한다.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이러한 대답에 앎은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,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주장을 논파한다. 

 이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답하던 알키비아데스는 결국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결론에 도달한다. 이에 소크라테스는 “퓌토에 있는 신전에 그 말(너 자신을 알라)을 봉헌한 사람은 하찮은 사람인가”(129a)라고 그에게 질문하면서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남들을 다스릴 자격을 가질 수 있냐고 묻는다. 알키비아데스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지적에 “정의를 돌보기 시작”(135e)하겠다고 응답하면서 <<알키비아데스I>>은 끝을 맺는다. 

 플라톤의 <<알키비아데스>>는 근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위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, 짧은 분량에 플라톤 전체의 사상을 골고
루, 특히 “너 자신을 알라”라는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대화편이다. 오늘날 타인을 돌보는 자들이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게 지배적인 상황을 보면서 이들에게 플라톤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. 무지를 깨달아서 혼을 돌보라!

by 산책 | 2010/06/23 15:05 | | 트랙백 | 덧글(0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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